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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폐의 의의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 경제학이 무엇을 공부하는 학문인지 물으면, 많은 이들이 '돈', 다시 말해 '화폐'에 관한 학문이라고 대답을 한다. 조금이라도 경제학을 접해 본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시경제학을 이미 공부한 독자는 알겠지만, 우선 미시경제학에서는 화폐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미시경제학에서 화폐는 오직 상품 가격의 단위로서만 의미를 가진다. 또한 거시경제학에서도 화폐가 주된 연구주제라고 보기는 힘들다. 거시경제학에서는 화폐 자체가 아니라, 화폐가 이자율 · 국민소득· 물가 등의 주요 거시경제변수에 미치는 영향이 보다 중요한 관심 대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시경제학에서는 화폐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보다 화폐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실제로 거시경제변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화폐 그 자체가 아니라 화폐가 담당하는 경제적 기능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람들에게 화폐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현금, 즉 한은행에서 발행한 지폐나 동전을 떠올린다. 그러나 지폐나 동전 말고도 흔히 화폐 고유의 기능으로 간주되는 여러 기능들을 수행하는 유·무형의 수단들이 여럿 존재한다. 이 때문에 거시경제학에서는 지폐와 동전 이외에도 예·적금 등의 금융상품과 어음이나 채권, 때로는 심지어 디지털화폐 또는 암호화폐까지도 화폐의 범주에 포함시켜 분석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거시경제학에서는 화폐를 그것이 가지는 고유한 특징으로 정의하는 대신, 화폐가 담당해야 할 고유의 기능을 먼저 정의한 후, 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라
면 모두 화폐로 분류하는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2. 화폐의 기능

(1) 교환의 매개물

화폐는 교환을 매개하는 수단, 즉 교환의 매개물(medium of exchange)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이는 화폐가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화폐를 통해 언제든지 상품과 서비스를 살 수 있으며, 이를 파는 사람도 언제든지 화폐를 거래의 대가로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이렇게 화폐가 교환의 매개물로 기능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이를 보편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이다. 이를 화폐의 보편적 수용성 (universal acceptability)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화폐는 보편적 수용성을 가지는 교환수단으로써, 물물교환의 불편을 해소하는 동시에, 전문화 또는 분업의 이익을 누릴 수 있게 해 준다. 예컨대 화폐가 없는 물물교환경제를 생각해 보자. 어떤 경제학자는 경제학 강의를 해 주는 대신 머리를 깎고 싶어 한다. 그런데 정작 대부분의 이발사는 경제학 강의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머리를 깎아 주는 대신에 쌀을 받고 싶어 한다고 하자. 이 경우 경제학자는 경제학 강의에 관심이 있는 이발사를 만날 때까지 온 동네, 아니 온 나라를 헤매야 할지도 모른다. 즉, 화폐가 존재하지 않는 물물교환경제에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진 사람이 내가 가진 것을 원하는 상황, 이른바 '욕망의 상호일치 (double coincidence of wants)'가 일어나는 아주 드문 상황에서만 교환이 성립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경제학자는 스스로 머리를 깎을 수밖에 없고, 혹여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이발사가 존재하더라도 그 역시 스스로 경제학을 공부할 수밖에 없다. 즉, 교환이 성립하기 어려우므로 전문화 또는 분업도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폐가 존재하면 이런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경제학자는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강의를 하고, 그 대가로 받은 화폐를 가지고 이발사에게 머리를 깎으면 되기 때문이다.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이발사 역시 사람들의 머리를 깎아 주고, 그 대가로 받은 화폐를 가지고 경제학자의 강의를 들으면 된다. 이와 같이 화폐가 존재하면 교환이 원활해질 뿐만 아니라, 전문화 또는 분업도 심화·확대된다. 이제 경제학자는 머리 깎을 걱정 없이 경제학 교육과 연구에 몰두할 수 있고, 이발사 역시 생업과 병행하여 힘들게 독학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화폐는 보편적 수용성을 가지는 교환의 매개물로 기능함으로써, 교환 및 거래를 원활히 해 주고 전문화 또는 분업의 이익을 확대한다.

(2) 가치의 척도

화폐는 가치의 척도 또는 계산의 단위(unit of account)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가치의 척도 기능은 경제에 존재하는 각 상품의 가치를 통일된 화폐단위로 측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화폐의 존재로 인해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상품, 서비스, 생산요소의 가치를 단일한 화폐단위로 나타낼 수 있고, 그들의 상대적인 가치를 비교할 수 있다. 반면 만일 화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예컨대 동일한 집 한 채의 가격을 어떤 사람은 소 10마리로, 다른 사람은 배추 1,000 포기로 제각각의 단위를 통해 표시할 것이다. 만일 이 집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이 이와 같이 서로 다른 단위로 표시된 매도 및 매수가격을 제시한다면, 가격 비교에 큰 혼란이 빚어지면서 도저히 집을 사고팔기 힘들 것이다. 화폐는 이렇게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의 가치를 단일한 단위로 표시할 수 있게 해 줌으로써, 가격 비교 및 합리적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고 거래를 촉진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가치 척도로서의 화폐는 각종 채권·채무금액을 확정하고 경제 전체의 국민소득, 즉 GDP를 측정하는 기준 단위가 된다.

(3) 가치저장수단

화폐는 가치저장수단(store of value)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즉, 다른 자산과 마찬가지로 화폐를 통해 현재의 구매력을 미래로 이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소득을 벌면 그중 일부만을 소비하고 나머지는 미래의 소비를 대비하여 여러 가지 자산의 형태로 저축을 한다. 이러한 자산에는 예금뿐만 아니라 주식, 채권, 펀드, 부동산, 귀금속 등 매우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지만, 여기에는 화폐도 포함된다. 즉 화폐도 하나의 자산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소비하고 남은 돈을 현금으로 금고에 보관하거나 은행에 수시로 찾을 수 있는 예금으로 넣어 두면, 미래에 소비를 위해 돈이 필요할 때 언제든 찾아서 쓸 수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부동산이나 귀금속 같은 실물자산이 가치저장수단으로써 화폐보다 더 나을 수 있다. 특히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는 더욱 그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채권·주식 등의 금융자산도 이자 또는 배당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저장수단으로써 화폐보다 우월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화폐가 가치저장수단으로써 그 매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화폐가 최고의 유동성을 지닌 자산이라는 점에 있다. 여기서 유동성 (liquidity)이란 어떤 자산이 구매력의 손실 없이, 얼마나 신속하게 현금으로 전환될 수 있는가를 나타낸다. 이후 살펴보겠지만 화폐는 현금 또는 거의 아무런 손실 없이 현금으로 바로 전환될 수 있는 예금 등의 금융자산으로 구성된 것이므로, 화폐야말로 다른 어떤 자산보다도 유동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반면 주택과 같은 실물자산은 유동성이 매우 낮은 편이다. 왜냐하면 이를 처분하여 현금화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화폐의 높은 유동성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상대적 단점에도 불구하고 가치저장수단으로써 화폐를 여전히 선호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3. 화폐용어정리

(1) 실물화폐/명목화폐

고유의 사용가치 및 교환가치를 가지고 화폐의 기능을 수행하는 물건을 실물화폐라고 한다. 화폐경제 초기에는 각기 그 사회의 고유한 사정에 의해 생산량이나 존재량이 충분하지 못하여 희소가치가 있는 조개 등 귀한 물건 또는 교환의 도구로 사용하기에 적당한 가축, 면포 등이 실물화폐로 사용되었으나 점차 운반도 간편하고 변질도 되지 않는 내구성이 있는 귀금속, 특히 금 또는 은이 주로 실물화폐로 쓰였다. 이러한 실물화폐는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필요한 양만큼 보관과 운반이 불편하여 소재가치와 교환가치가 다른 무엇을 화폐로 사용하게 되는데 이를 명목화폐라고 한다. 오늘날에는 은행권(지폐)으로 대표되는 명목화폐가 화폐의 대부분을 이룬다. 명목화폐는 그 자체가 가치를 가져서 화폐가 된 것이 아니라, 법률에 근거하거나 역사적인 관습이 그대로 사회적 신임을 얻어 통용되게 된 것이다.

(2) 발행중지화폐/유통정지화폐

발행중지화폐는 발권기관인 한국은행이 화폐의 원활한 유통 등을 위해 발행을 중지하기로 한 화폐이다. 발행중지화폐는 비록 화폐 발행은 중단되지만 화폐로서의 강제통용력도 있고 지급결제수단으로 사용도 가능하다. 또한 발행중지화폐는 한국은행 및 금융기관에서 현행 사용하고 있는 화폐와 ‘액면가’로 교환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유통정지화폐는 화폐 발행을 중단할 뿐만 아니라 시중에서의 사용도 정지된 화폐이다. 즉 화폐로서의 강제통용력이 상실되어 지급결제수단으로 사용할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 화폐 중 1962년 제2차 통화조치 이전에 발행된 화폐들은 화폐로서의 효력이 상실된 유통정지화폐이고 1962년 제2차 통화조치 이후에 발행된 화폐 중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은행권 4종류(오만 원권, 만 원권, 오천 원권, 천 원권)와 주화 6종류(오백원화, 백원화, 오 십원화, 십원화, 오원화, 일원화)를 제외한 모든 화폐는 발행중지화폐이다.

(3) 화폐발행과 화폐발행액

화폐발행은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독점적인 권한으로 금융시장에서 국공채 매입, 은행에 대출, 외환 매입, 금융기관의 예금 인출 요청 등의 형태로 화폐를 시중에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발행된 화폐는 민간이 보유하거나 금융기관이 예금인출에 대비하여 보유하게 된다. 따라서 화폐발행액은 민간보유현금(정부부문의 시재금 포함)과 금융회사의 시재금을 합친 것이다. 금융기관 등으로부터 지급준비금 등의 형태로 다시 중앙은행에 환수되는 화폐가 있으면 화폐발행액은 줄어들게 된다.

(4) 미발행화폐

미발행화폐란 한국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은행권과 주화 중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아니하여 폐기(잘게 썰거나, 분쇄 또는 녹이는 등의 방법으로 소각)하기로 결정한 화폐를 제외한 모든 은행권과 주화를 말한다. 한국은행은 미발행화폐를 필요한 곳에 적기에 공급하기 위하여 한국은행 본부와 각 지역본부에 분산하여 보관하고 있으며 동 화폐의 대부분은 한국조폐공사로부터 제조하여 납품받은 새 화폐와 금융기관들이 지급준비금 불입 등을 위해 입금한 화폐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한국은행은 미발행화폐를 한국은행 본부 또는 지역본부가 아닌 특정 금융기관에 보관케 하는 미발행화폐 임치제도를 운용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은행 본부 및 지역본부로부터 원격지에 위치하여 교통여건이 열악한 지역의 화폐수급 애로를 해소하기 위하여 동 지역소재 금융기관 1개 점포를 지정하여 한국은행의 미발행화폐를 보관케 하고 한국은행의 입회, 지시, 감독하에 화폐의 입·출업무를 수행하게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1996년 가장 많은 23개 점포를 지정·운영하였으나 현재는 교통여건 개선 등으로 한 곳도 운용하지 않고 있다.

(5) 화폐의 액면체계

화폐의 액면체계는 한 국가의 화폐를 구성하는 액면금액의 틀을 의미하는데, 보통 액면체계는 일상적인 거래 편의 도모라는 대원칙 아래 국가의 경제·사회적 여건과 국민의 화폐사용 습관의 영향을 받는다. 화폐의 액면체계는 대부분 기본수(1·5·10 등)에 10의 승수(10, 100, 1000...)를 곱하여 액면의 크기를 높여가는 방식으로 정해진다. 액면체계는 크게 [1,5] 체계와 [1,2,5] 체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1,5] 체계는 (1, 5, 10, 50, 100, 500) 등의 액면배열을 말하여 [1,2,5] 체계는 (1, 2, 5, 10, 20, 50, 100, 200, 500) 등의 액면배열을 말한다. 특정액면에서 2 대신 2.5를 사용하는 [1,2.5,5] 체계도 있는데 보통 [1,2,5] 체계로 분류한다. [1,5] 체계는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 주로 동아시아 국가에서 채택하고, [1,2,5] 체계는 유럽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대종을 이루고 있다. 액면 종류가 적으면 사용자가 은행권 액면을 쉽게 식별하고 계산이 용이한 이점이 있는 반면에 현금거래에 필요한 은행권 수량이 상대적으로 많아 불편하고 화폐 제조비용도 많이 드는 단점도 있다.

(6) 화폐교환

화폐교환이란 고객의 요구에 따라 다른 종류의 화폐로 바꾸어 주거나 훼손·오염 또는 마모 등의 사유로 손상된 화폐를 사용할 수 있는 화폐로 바꾸어 주는 것을 말한다. 손상된 화폐를 바꾸어 줄 때에는 일정한 기준이 있다. 앞뒷면을 모두 갖춘 은행권은 면적을 기준으로 3/4 이상 남아있는 경우 액면금액의 전액을, 2/5 이상 3/4 미만인 경우 액면금액의 반액을 교환해 주나 2/5 미만인 것은 무효로 교환이 불가하다. 여러 개로 조각난 은행권은 동일 은행권으로 인정되는 부분을 모두 합친 면적을 기준으로 교환하며 불에 탄 은행권은 불에 탄 재가 은행권에서 떨어지지 않고 원형에 붙어 있거나 재만 남은 은행권도 흩어지지 않고 붙어 있으면 그 재 부분까지 면적으로 판정하여 교환해 준다. 한편 주화는 모양을 알아볼 수 있고 진위를 판별할 수 있으면 액면금액으로 바꾸어 준다.

(7) 화폐환수

한국은행이 발행하여 시중에서 유통되는 화폐는 예금 또는 세금 납부 등으로 금융기관으로 입금되며, 금융기관은 입금된 화폐 중 일부를 고객의 예금인출에 대비하여 시재금으로 보유하고 나머지는 한국은행에 예금지급준비금과 결제자금 등으로 입금하는데, 이처럼 한국은행에서 발행된 화폐가 다시 한국은행으로 되돌아 들어오는 것을 화폐의 환수라 한다. 한국은행은 환수된 화폐에 대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사용화폐와 다시 사용할 수 없는 손상화폐로 구분하는 정사(整査) 과정을 거친 후 사용화폐는 금융기관을 통해 다시 시중에 발행하고, 손상화폐는 폐기한다.

(8)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는 중앙은행을 뜻하는 'Central Bank'와 디지털 화폐(Digital Currency)를 합친 용어로, 실물 명목화폐를 대체하거나 보완하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화폐를 뜻한다. 여기서 디지털화폐는 내장된 칩 속에 돈의 액수가 기록돼 있어, 물품이나 서비스 구매 시 사용액만큼 차감되는 전자화폐를 가리킨다.  CBDC는 블록체인이나 분산원장기술 등을 이용해 전자적 형태로 저장한다는 점에서 암호화폐와 유사하지만, 중앙은행이 보증한다는 점에서 비트코인 등의 민간 암호화폐보다 안정성이 높다. 또 국가가 보증하기 때문에 일반 지폐처럼 가치 변동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실시간으로 가격 변동이 큰 암호화폐와 차이가 있다. CBDC는 전자적 형태로 발행되므로 현금과 달리 거래의 익명성을 제한할 수 있으며, 정책 목적에 따라 이자 지급·보유한도 설정·이용시간 조절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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